고체 내의 결함 (1) 카스타드와 재료공학
개강과 함께 돌아온 민시키의 재료이야기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고체 내의 결함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사실 결함은 재료공학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인데, 너무 늦게 다루게 된 것 같네요. 거의 1년 전에 한 분께서 댓글로 결함을 다루어달라고 요청해주셨는데,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보시며 노여움을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왜 갑자기 카스타드 사진이냐고요? 읽다 보시면 알게 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이상적인 고체 vs 실제 고체
우리가 생각하는 고체는 어떤 모습인가요? 원자들이 FCC, BCC, HCP 등의 일정한 규칙으로 완벽히, 빽빽하게 쌓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상적인 고체의 경우고, 실제 고체는 이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상적인 고체에서는 모든 부분이 동일한 결정 방향을 갖는 데에 반해, 대부분의 실제 고체에서는 물질의 부분 부분마다 다른 결정 방향을 갖습니다. 결정 방향이 다르다는 건, 원자들이 쌓이는 방향이 다르다는 뜻이죠! 이렇게 특정한 결정 방향을 갖는 각각의 부분을 우리는 결정립(grain)이라고 부르고, 여러 결정립으로 구성된 재료를 다결정(polycrystalline) 재료라고 부릅니다. 물론 인공적으로 만들기 쉽지 않지만, 물질 전체가 동일한 결정 방향을 갖는 단결정(single crystal) 재료도 존재합니다.
결정 방향을 제외하고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결함(defect), 혹은 불완전성(imperfection)이 있다는 점이지요. 구리라는 금속 물질을 가정해보면, 이상적인 구리는 수많은 Cu 원자들이 FCC라는 일정한 규칙으로 빽빽하게 쌓여있는 형태일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구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Cu 원자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을 수도 있고,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Cu 원자가 끼어들어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Cu가 아닌 다른 불순물 원자가 Cu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Cu 원자 사이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경우가 가능한데, 이렇게 이상적인 원자의 배열에 어긋나는 모든 형태를 우리는 결함이라고 부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결함의 예시들, 그리고 그 외의 결함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시 자세히 다루도록 합시다!
아하.. 그러면 결함은 나쁜 거네요! (재료공학에서 결함의 중요성)
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ㅎㅎ 사실 defect라는 용어 때문에 뭔가 나쁜 것 같고, 문제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결함을 나쁘다고 말하면, 재료공학이 나쁜 학문이 되는 거에요. 그 정도로 재료공학에서 결함은 아주 큰 역할을 한답니다. 하나의 예를 통해서 결함의 중요성(?)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사실 한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간단히 언급하신 설명인데, 굉장히 좋은 예시인 것 같아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한 남자가 카스타드라는 과자를 처음 접했다고 합시다. 카스타드를 손으로 집어서 만져봐요. 말랑말랑하면서도 스펀지 같은 특유의 질감이 느껴져요. 나쁘지 않네요. 그리고 직접 맛을 봅니다. 맛도 맛인데, 씹을 때 느껴지는 그 말랑말랑한 카스타드만의 식감이 바로 카스타드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죠. 남자는 카스타드에 반해서 밀가루, 계란 등등 카스타드의 원재료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카스타드를 직접 만들어 먹기 위해 재료를 전부 준비해서 직접 요리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요리를 해도 카스타드의 맛이 나지 않아요. 분명 재료 종류와 비율까지 정확히 맞췄는데도 말이죠..
왜일까요? 카스타드 맛의 핵심은 원재료의 종류가 아니라, 바로 카스타드에 송송 뚫려있는 구멍들이기 때문이에요.. 남자는 카스타드의 구멍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재료 종류만 고려했기 때문에 원하는 특성의 음식을 만들어내지 못 했던 거지요. 남자는 빵에 송송 작은 구멍들을 만들어야 원하는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요리법을 열심히 연구해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적합한 요리법을 찾아내어 구멍이 송송 나있는, 원하는 맛과 식감을 가진 카스타드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다시 재료공학으로 돌아와 봅시다. 다들 잘 이해하셨다시피 예시 속의 카스타드가 바로 우리가 다루는 재료이고, 밀가루, 계란 등의 원재료가 바로 재료의 구성 성분입니다. 송송 뚫린 구멍은 재료 내의 결함을 뜻하고, 요리법은 곧 공정법이죠. 우리가 재료공학에서 다루는 재료의 특성들은 재료를 이루는 구성 성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많은 경우 재료 내의 결함에 의해 발생합니다. 마치 카스타드의 식감처럼 말이죠.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특성의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내의 결함을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공정법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바로 재료공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재료 내의 결함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재료에서 결함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이해되셨나요??
결함을 어떻게 활용하나요??
아직 결함의 종류도 안 알아봤으니 자세히는 다루지 않고, 그냥 대표적으로 결함을 활용하는 예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고 오늘은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대표적인 예는 바로 반도체(semiconductor)입니다. 우리가 반도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주로 불순물 반도체인데요. 불순물 반도체란 Si(실리콘), Ge(저마늄) 등의 14족 원소에 B(붕소), Ga(갈륨) 등의 13족 원소나 P(인), As(비소), Sb(안티몬) 등의 15족 원소를 불순물로 첨가한 물질을 말합니다. 최외각 전자가 4개인 Si 원자들끼리 결합을 하게 되면 모든 원자가 8개의 최외각 전자를 가져 안정화되면서, 전하 운반자의 수가 적어집니다. 하지만 Si 원자들 사이에 최외각 전자가 5개인 Sb 원자가 소량 도핑되어 주변의 Si 원자들과 결합한다면, Sb 원자 하나 당 1개의 과잉전자가 생겨나고, 이 전자가 전하 운반자 역할을 하면서 전류가 잘 흐르게 됩니다. 이러한 반도체를 우리는 n형 반도체라고 부르지요. 반대로 최외각 전자가 3개인 B 원자가 소량 도핑된다면 B 원자 1개당 전자 하나가 부족해지고, 이는 양전하의 기능을 하는 정공이 생김을 뜻합니다. 따라서 마찬가지로 정공이 전하 운반자 역할을 하여 전류가 잘 흐르게 되지요. 이러한 반도체는 p형 반도체라고 부릅니다. 여기선 반도체의 원리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반도체로서의 특성 자체가 불순물이라는 결함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즉 우리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결함을 인위적으로 생성해내는 거지요.
두 번째 예시는 바로 모팔모 할아버지입니다! 오래 된 드라마이긴 한데, 이 글을 읽으실 독자분들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모두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모팔모는 주몽을 위해 튼튼한 강철검을 만드는 부여 철기방의 야철대장입니다! 모팔모는 튼튼한 강철검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하는데요. 주로 뜨겁게 달구어진 강철검을 망치로 여러 차례 세게 내려친 후, 찬 물에 넣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과정들은 현재 철강 산업에서도 그대로 활용된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과정은 철의 결정립 크기를 줄여 결정립들 간의 경계인 결정립계(grain boundary)를 증가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결함의 한 종류인 결정립계가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재료의 강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결함을 늘리는 것이지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루도록 하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은 결함의 종류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는 않고, 결함이 뭔지, 왜 중요한지, 어떻게 활용되는지 등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결함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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