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고 묵직한 DSLR 카메라는 초보자들이 다가가기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물건일텐데요. 사실 디지털 카메라는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공학적이고 흥미로운 장치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세상에서 가장 공학적인 카메라 메뉴얼을 써보려고 합니다.
<사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사진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밝기, 형태, 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피사체를 촬영하더라도 밝기, 형태, 색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진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DSLR 카메라의 복잡해보이는 조작계는 사실 이들 3요소를 조절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3요소를 각각 따로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엔지니어들은 조리개값, 셔터스피드, ISO로 불리는 3가지 변수들을 조절하여 위의 3요소를 조절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밝기는 3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고, 형태는 2가지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으니, 공학의 말을 빌리자면 각각 3개, 2개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진 촬영의 4가지 모드 (A, S, P, M)>
카메라는 앞서 제시한 3가지 변수들을 어떻게 조작하는지에 따라 4가지 모드로 나뉘고, 이는 사진의 밝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DSLR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진 촬영의 4가지 모드를 완전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조리개 우선 모드(Aperture mode)
조리개 우선 모드에서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조리개의 열린 정도를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조작합니다. 즉, 다른 조작 요소(셔터스피드, ISO)는 적절한 밝기(노출)를 맞추기 위해 자동으로 조절되는 것입니다.
한편, 조리개의 열린 정도는 f값이라는 단위를 이용해서 나타냅니다. f값은 보통 1.8(최대 개방)에서 시작해서 1.4배씩 커지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데, 각 단계를 1 스탑이라고 부릅니다. 정리하자면, 조리개가 1스탑씩 늘어날 때 조리개의 직경은 1.4분의 1로 줄어들고 밝기는 2분의 1로 줄어들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A모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조리개값이 밝기뿐만 아니라 사진의 형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조리개를 조였을 때(f값이 낮을 때) 사진의 심도가 얕아지면서 초점이 맞은 영역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아웃포커싱이라고 부릅니다. 아웃포커싱을 적절히 이용하면 피사체에 관찰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 조리개를 조여서 찍는 경우에는 빛갈라짐이라고 불리는 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빛 갈리짐은 조리개가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여러개의 날개 형태로 이뤄져 있어 빛의 회절에 의해 발생하는데, 조리개 날이 짝수면 n개, 홀수면 2n개의 빛 갈라짐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 셔터스피드 우선 모드(Shutterspeed mode)
셔터스피드 모드에서는 셔터의 열고 닫는 속도를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조작합니다. 여기서 셔터는 카메라 내부에서 블라인드 역할을 하는 부품으로, 이미지 센서를 설정해놓은 시간만큼 빛에 노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셔터스피드는 s(초)를 이용해 나타내며, 셔터스피드가 길수록 밝은 사진이 찍힙니다. 사진의 밝기는 노출 시간과 선형적으로 비례하므로 셔터스피드가 2배 느려지면 밝기는 2배 밝아지고, 사진이 1스탑 밝아집니다.
셔터스피드 역시 사진의 형태를 바꿀 수 있는데 사용됩니다. 셔터스피드가 느려지면 촬영하는 동안 발생한 피사체의 움직임이 모션 블러(motion blur) 형태로 사진에 나타납니다. 이를 이용하면 속도감이 살아있는 사진을 만들어낼 수도 있씁니다.
- 프로그램 모드(Program mode)
프로그램 모드는 앞선 2가지 모드와는 달리 그 이름에 조작하는 변수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수를 조작하고 다른 변수들은 자동으로 조절된다는 점은 그대로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센서 민감도인 ISO입니다.
ISO는 본래 국제 표준 기구의 약자로, 이미지 센서의 민감도에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은 필름 카메라 시절 해당 기구에서 필름 감광도의 표준을 설정한데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필름 카메라와 달리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전자적인 조작을 통해 센서의 민감도를 쉽게 바꿀 수 있어서 ISO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ISO도 사진 밝기와 선형적인 관계를 가지므로 ISO가 2배 커지면 사진의 밝기는 2배 밝아집니다. ISO는 밝기만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촬영 여건상 다른 변수들(조리개, 셔터스피드)을 바꾸기 어려울 때 마지막 열쇠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ISO를 높일때에는 신중해야 하는데, 이는 센서가 민감해질 수록 사진에 노이즈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 매뉴얼 모드(Manual mode)
마지막은 매뉴얼 모드입니다. 매뉴얼 모드는 앞선 세 가지 모드와는 완전히 달리 3가지 변수들을 촬영자가 직접 조작하여 사진을 촬영합니다. 카메라가 자동으로 적절한 노출이 되도록 변수들을 조절해주지 않기 때문에 숙련도가 요구되는 촬영 모드입니다. 그렇다면, M모드로 사진을 찍는 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사진 촬영은 총 3의 자유도를 갖습니다. 따라서 추가적인 제약조건 없이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몇 가지 제약조건들을 더 걸어서 자유도를 1까지 낮춰주어야 합니다.
첫 번째로 고려해볼만한 제약조건은 바로 원하는 사진의 심도입니다. 보통 인물 사진의 경우 인물에 집중시키고자 조리개를 적극적으로 열어서 아웃포커싱 효과를 활용하는 편이며, 풍경 사진의 경우 풍경의 모든 영역에 초점이 맞을 수 있도록 조리개를 적극적으로 여는 편입니다. 이제 자유도가 2까지 줄어들었습니다.
다음으로 고려할 제약조건은 모션 블러의 유무입니다. 패닝샷, 궤적 사진 등 모션 블러를 의도할 경우 셔터스피드를 늦춰 촬영하고, 그 외에 선명한 사진을 의도한 경우에는 셔터스피드를 줄여서 촬영합니다. 굳이 촬영 중에 카메라를 움직이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손떨림에 의해 블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모션 블러 없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셔터스피드를 1/100초까지는 낮추는 것이 좋습니다. 드디어 자유도가 1까지 내려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밝기에 맞춰 ISO를 조절하면 사진 촬영 세팅은 끝이 납니다. 카메라에는 현재 사진의 밝기를 알려주는 노출계라는 장치가 있어서 현재 세팅값에서 사진의 밝기가 어떠한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화룡점정, 사진 보정>
모던 포토그래피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사진을 찍은 이후에도 보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진 보정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사진의 밝기, 형태, 색상을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실제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잘못 찍은 사진도 살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 보정은 모던 포토그래피에서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사진 보정은 RAW 파일이라는 파일 형식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흔하게 사용되는 jpg.이나 jpeg.와 마찬가지로 이미지 파일을 저장하는 파일 형식이지만 일반적인 이미지 파일보다 훨씬 용량이 높은데요. 이는 2차원 평면 구조를 갖는 jpg와 jpeg와는 달리, RAW 파일은 서로 다른 밝기에서 촬영된 2차원 이미지가 겹쳐져있는 3차원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RAW 파일의 가장 밝은 층과 가장 어두운 층 사이의 간격을 DR(dynamic range)라고 하며, DR이 높을수록 더욱 다이나믹한 보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보정은 RAW파일로부터 jpg파일을 얻어내는 과정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보정의 첫 단계는 각 픽셀에 대해 여러 층 중에 어떤 층의 픽셀을 사용할지 고르는 과정입니다. 자연스러운 사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보통 사진의 어두운 영역의 밝기를 올리고, 밝은 영역의 밝기를 내리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필자는 이를 사진 밝기의 언덕과 계곡(Hills and Valleys)을 평평하게 한다는 의미로 '사진 펴기'라고 부릅니다.
이후에는 사진의 채도(색상), 샤프니스(선명도), 비네팅(주변부 밝기 변화), 그레인(노이즈 추가) 등을 촬영자 의도에 따라 바꿔가며 사진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이후에 마치 라이트룸에서 필름 사진을 현상하듯 RAW 파일을 한 층짜리 jpg, jpeg파일로 내보내면 보정한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됩니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코로나 19 시대의 실내 생활에 지쳐서 외출할 이유를 만들고자 처음으로 사진이라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외출할 명목’으로 시작된 활동이었지만 머릿 속 이미지와 피사체를 연결시키는 촬영 세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공학적 문제 해결과 닮아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일상의 색체를 불어 넣어줄 취미를 꼭 가지시길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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