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의 시작을 알렸던 고분자화학 첫 시간, 교수님께서 담대하게 외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고분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글쎄요. BTS, 손흥민, 인공지능의 시대라면 모를까 고분자의 시대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기, 3년간 우리를 지켜줬던 방역마스크, 배관, 가구, 배터리 전해질, OLED, 각종 신소재들 등등…
평소에 의식하지 않았지만 우리 주변은 고분자화학 발전의 산물로 가득 차 있고 미래 또한 상당 부분 고분자화학이 이끌어 나갈 것임을…
화학생물공학부의 고분자화학 과목은 이처럼 우리 곁에 없어서는 안 될 고분자의 개념, 그리고 합성법에 초점을 맞춰 가르칩니다.
고분자화학 과목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간략하게 한번 알아봅시다!
1. 과목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
1) 고분자의 개념과 분류
고분자(polymer)란 중합(polymerization) 과정을 통하여 단위체(monomer)가 고도로 결합되어 높은 분자량을 나타내는 분자입니다. 주로 높은 분자량을 가지는 분자인 거대분자(macromolecule)과 혼동하여 사용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단위체의 중합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고분자가 더 좁은 개념입니다.
고분자의 묘한 점은 그 물리화학적 성질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위체인 에틸렌으로부터 합성되어 50,000개 이상의 탄소가 연결된 폴리에틸렌(PE)은 엄청난 분자량 때문에 기존의 에틸렌과는 아예 다른 물성을 나타낼 것입니다. 한편 에틸렌을 어떤 방법으로 중합하냐에 따라 가지(branch)의 길이와 빈도가 다른 폴리에틸렌이 합성되는데, 이것 또한 서로 다른 밀도와 인장 강도를 나타냅니다. 단위체로부터 원하는 물성의 고분자를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합성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분자가 워낙 다양한 만큼 분류법도 다양합니다. 우선 합성 메커니즘에 따라 단계중합(step polymerization)과 연쇄중합(chain polymerization)으로 나눠집니다. 단계중합은 단위체가 작용기 간의 반응으로 서로 연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고분자가 형성되고(n-mer + m-mer → (n+m)-mer) 연쇄중합은 개시자(Initiator)의 도움을 받아 형성된 반응성을 가지는 사슬에 단위체가 하나씩 붙어서 고분자가 형성됩니다(n-mer + monomer → (n+1)-mer). 메커니즘이 현저히 다른 만큼 반응속도론적 차이, 형성되는 사슬 길이의 차이가 존재하고 이에 대해 수업시간에 자세히 배웁니다.
메커니즘 외에도 구조에 따라 linear, cyclic, branched, network 등으로 분류됩니다. 또한 중합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한 종류인지 그보다 많은지에 따라 단중합체(homopolymer), 공중합체(copolymer)로 나뉩니다. 고분자 간 어떤 군집 형태를 나타내냐에 따라 열가소성 수지(thermoplastic), 열경화성 수지(thermoset), 탄성체(elastomer)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2) 고분자의 합성법
고분자가 다양한 만큼, 합성법 또한 정말 다양합니다. 한 학기동안 Young의 『Introduction to Polymers』 교재를 9장까지 다루는데, 그중 3장~7장까지 5개 장에서 장마다 하나씩 총 다섯가지 굵직한 합성법에 대해 다룹니다.
- 3장의 Step polymerization은 앞서 언급했듯이 단위체의 작용기 간 반응으로 중합체를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작용기끼리 반응했는가에 따라 중합체를 연결하는 결합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diacid와 diamine이 반응하면 amide 결합을 가지는 polyamide가, diisocyanate와 diol이 반응하면 urethane 결합을 가지는 polyurethane이 합성됩니다. 단위체의 작용기를 보고 중합체의 종류와 결합 형태를 예측하는 법을 배웁니다.
- 4장의 Radical polymerization은 상기한 chain polymerization 중 “반응성을 가지는 사슬 말단”이 radical인 경우의 합성법입니다. 주로 이중결합을 가지는 olefin 계열의 단위체가 radical 개시자의 도움을 받아 합성이 진행되고, radical인 고분자 사슬끼리 결합하여 반응이 종결됩니다. 개시자와 단량체, 고분자 사슬과 단량체를 어떤 상태에서 반응시키느냐(bulk, solution, suspension, emulsion)에 따른 4가지 합성법을 배웁니다. 추가로 단원 말미에 chain polymerization과 유사하나 종결 반응이 존재하지 않는 “living polymerization”가 중요한 반응 메커니즘으로 제시됩니다.
- 5장의 Ionic polymerization은 radical과 유사하나 “반응성을 가지는 사슬 말단”이 양이온 혹은 음이온인 경우의 합성법입니다. Radical의 경우 다른 사슬과 반응하여 종결이 가능하지만, 양이온/음이온은 같은 전하 간의 반발로 사슬 간의 반응으로 종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양이온의 경우 “chain transfer”라고 불리는 별도의 반응을 통하여 종결되지만, 음이온은 별도의 종결반응이 없어 실질적으로 중합이 끝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사슬 말단의 양이온, 음이온이 안정성을 결정하는 counter ion의 효과를 배웁니다.
- 6장의 Coordination polymerization은 중금속 촉매의 empty d-orbital을 통한 배위결합으로 중합을 일으키는 합성법입니다. 사용하는 촉매로는 4-8족 전이금속 할로겐화물(TiCl3)와 1-3족 알킬기 금속(AlEt3)을 섞은 Ziegler-Natta 촉매와 +2 산화수의 금속이 2개의 Cyclopentadiene 사이에 끼워진 metallocene 촉매로 두 가지를 배웁니다. Coordination polymerization은 균일한 입체성을 가진 고분자를 합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광학이성질체인 단량체를 가지고 고분자를 합성하면 R, S chiral center가 무작위적으로 되지만, 적당한 Ziegler-Natta/metallocene 촉매를 이용하면 R, S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어느 한 입체성만 나타내는 고분자를 합성할 수 있습니다.
- 7장의 Ring-opening polymerization은 말 그대로 고리 형태의 단위체를 열면서 중합하는 합성법입니다. 개시자, 촉매를 어떤 것을 사용하냐에 따라 앞서 배운 radical/ionic/coordination polymerization이 모두 가능합니다. 어떤 고리 형태의 단위체가 주어졌을 어떤 종류의 polymerization을 이용해야 원하는 고분자를 많이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배웁니다.
- 앞서 배운 모든 합성법을 종합하여 한 종류의 단위체가 아니라 여러 단위체로 공중합체를 합성하는 Copolymerization을 9장에서 배우며 강의가 마무리됩니다. 여러 단위체를 가지고 고분자를 합성하는 경우 서로 중합하기 위한 단위체 간의 경쟁이 일어납니다. 합성법 종류에 따라 어떤 단위체가 더 반응성이 높은지, 그에 따라 합성되는 공중합체는 어떤 형태일지 배웁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고분자화학의 꽃인 block/graft copolymerization이 등장합니다. 공중합체가 AAAABBBB처럼 단위체 별로 특정 구간에 구별된 형태로, 예를 들어 isoprene을 anionic polymerization으로 중합하다가 사슬 말단의 음이온을 화학 처리를 통하여 라디칼로 전환하고, 이어서 styrene을 중합하여 합성 가능합니다. 정말 다양한 방법의 block/graft copolymerization을 배우며 앞서 배웠던 모든 중합법을 잘 이해했는가를 시험하게 됩니다.
3) 고분자 합성의 반응 속도론
합성법마다 반응 메커니즘이 상이하기 때문에 반응 속도론 또한 다릅니다. 앞서 소개한 모든 합성법에 대해 메커니즘의 이해를 바탕으로 반응 속도식을 세우고, 이를 통해서 반응 진척도, 고분자의 길이 등을 어떻게 통제할지 공부합니다.
대표적으로 radical polymerization은 개시, 진행, 종결의 3단계 메커니즘을 나타냅니다. 이를 바탕으로 개시 속도와 종결 속도가 같은 정상 상태 가정 하에 중합 진행 속도가 계산됩니다. 또한 시간당 소모되는 단위체 수를 시간당 생성되는 고분자 수로 나눈 것으로 생성되는 고분자의 평균 길이를 다음과 같이 계산할 수 있습니다.
두 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위체의 농도 [M]을 높게 하면 진행 속도와 고분자 길이가 모두 증가하고, 개시자의 농도 [I]를 높게 하면 진행 속도는 높아지지만 고분자 길이는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추가로 반응의 활성화에너지와 온도를 관계 짓는 Arrhenius 식을 통하여 온도의 영향 또한 따져볼 수 있습니다.
보통 개시 단계에서 개시자가 쪼개져 라디칼이 형성되는 과정의 활성화에너지(Ed)가 가장 크므로, 진행 속도와 고분자 길이를 온도로 미분한 값의 부호는 각각 양수와 음수로 결정됩니다. 즉 온도가 높을수록 중합의 진행 속도는 증가하지만 고분자의 길이는 감소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속도식을 세우면 반응의 조건을 다르게 했을 때의 중합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에, 각 고분자 중합 반응의 메커니즘이 고분자화학의 주된 관심사가 됩니다.
4) 고분자 합성의 실사
고분자 합성법을 모두 이해했다 하더라도 이론과 실제는 다르기에 고분자 합성이 실제로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실사에 대해 배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페트병의 재료인 Polyethylene terephthalate(PET)는 배운 대로라면 Terephthalate(TPA)와 Ethylene glycol(EG)의 step polymerization으로 쉽게 합성이 될 것만 같지만, TPA가 300⁰C에서 승화하기 때문에 반응 속도를 충분히 높이지 못해 실제 합성에 사용되는 방법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Dimethyl terephthalate와 EG의 반응으로 Bis-hydroxy ethylene terephthalate(BHET)를 먼저 합성한 뒤, BHET 간의 step polymerization을 고온에서 진행시켜 만듭니다.
PET 외에도 여러 반응 조건에 민감한 고분자 합성법이 많습니다. 일례로 Phenol과 Formaldehyde의 반응으로 형성되는 Bakelite 고분자는 반응 조건에 따라 다른 구조의 고분자로 합성됩니다. 가령 Formaldehyde가 과량이고 염기성인 환경에서는 Resole이, Phenol이 과량이고 산성인 환경에서는 Novolac이 합성됩니다.
이 밖에도 고분자에 대해 정말 다양한 내용을 다룹니다. 무사히 수강을 마쳤다면 고분자 합성에 대한 지식을 한아름 얻어갈 수 있을 겁니다.
2. 선배의 조언
유기화학 1, 2가 선이수 과목입니다. 합성과 반응이 주가 되므로 특히 유기화학 2를 수강하지 않았다면 못 들을 정도는 아니나 바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겁니다. 유기화학을 괜찮게 들었다면 고분자화학 수강을 추천합니다.
화생공에서 2학년까지 물리화학, 유기화학, 응용생화학 등 모든 분야를 균형 있게 다뤘다면, 3학년부터는 전공필수 과목이 반응공학, 공정유체역학, 열 및 물질전달로 공정 분야로 급격하게 기울어집니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았거나 균형 잡힌 배움을 원하신다면 전기화학, 분자생물공학과 함께 강력하게 수강을 추천드립니다.
내용이 꽤 방대합니다. 본 글에서 큰 줄기들은 대강 다뤘으나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고분자 관련 학부 수업이 고분자화학, 고분자물성 두개밖에 없는 만큼 학생들이 한 학기 강의만으로도 고분자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가기를 바라는 교수님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악명이 높은 화학생물공학부의 응용생화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암기량이 꽤나 많은 과목입니다. 자신만의 정리 노트를 만들어 구조를 그리고 반응을 써가며 공부하기를 추천 드립니다. (정리 노트를 잘 안 만드는 저도 처음으로 만들어 본 과목이었습니다.) 무작정 암기를 시키는 과목은 아니지만, 암기를 매우 싫어한다면 기피 과목입니다.
3. 진로 선택에 도움 되는 점
화생공을 이루는 4개의 기둥은 공정시스템, 무기 및 전자재료, 고분자 및 유기 소재, 생물 및 환경입니다. 만약 화학이 좋고 유기합성에 관심이 있다면 4개의 기둥 중 고분자 및 유기소재 쪽 진로를 희망하게 될 것이고, 고분자화학을 수강하는 것이 그 대장정의 든든한 시작점이 되어 줄 것입니다.
글을 시작하며 언급했듯이 고분자는 정말 어디에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신소재, 생체고분자, 전해질까지… 고분자쪽 진로를 선택한다면 LG화학, 삼성전자, 제일모직, DuPont, Geplastics 등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기업체에서 여러분을 찾을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고분자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진로를 희망하더라도 언젠가 고분자를 맞닥트리게 될 수도 있는데, 그 의외의 순간을 위해서 3학점 정도 투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화생공에서 고분자를 주로 하는 연구실은 세 곳이 있습니다. 2023년 고분자화학을 맡으신 오준학 교수님의 유기 고분자 전자 연구실에서는 고성능 반도체, 도펀트 등 전자소재에 들어가는 전기 전도성 고분자를 합성합니다. 최근에 연구실에서 높은 광학 활성을 가지는 나선형 초분자체를 합성하여 고민감도 원편광 센서 생산의 길을 열었는데, 해당 연구가 1월에 네이쳐지에 실려 수업시간에 자랑하기도 하셨습니다.
이종찬 교수님의 고분자 화학 연구실에서는 리튬 전지에 들어가는 고분자 전해질과 항바이러스/항균성 고분자 중합을 연구합니다. 그리고 김소연 교수님의 연성소재 나노물리 연구실에서는 고분자나노복합체의 물리적 성질을 탐구하여 목적에 맞는 복합체를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분자의 길에는 취업뿐만 아니라 연구의 길도 활짝 열려 있습니다.
4. 맺음말
전공필수 과목들이 편향되어 있는 것 때문인지, 제 주변 친구들을 포함하여 공정 쪽으로만 강의를 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매력 있는 화생공의 다른 분야들을 경험해 볼 기회를 놓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령 유기화학이 잘 맞지 않았더라도, 고분자화학은 대상이 구체적이고 그 활용이 와닿기 때문에 훨씬 더 재미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고분자화학 한 입 어떠신가요?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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