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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백서/재료공학부

재료공학부: 재료종합설계 — 나의 경험담

by STEMSNU 2022. 8. 23.

 

안녕하세요. 공우 12.5기, 재료공학부 한승윤입니다.

전공백서에서는 수많은 과목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재료종합설계에 대한 과목 소개 역시 잘 정리되어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재료종합설계의 소개가 아닌 재료종합설계를 수강하면서의 개인적 경험을 조금 적어보고자 합니다. 멋지게 어려움을 해결하기는커녕 조원 토의를 이해하고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소위 말하는 '조별과제 빌런’으로 남게 된 이야기입니다.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막연하게 연구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재료종합설계의 핵심은 ‘논리적 사고를 통한 아이디어의 도출’입니다. 연구자들은 논문을 읽고 지식을 쌓은 뒤 이들을 조합하고 응용하여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내곤 합니다. 실험을 통해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차라리 쉬운 축에 속할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이전에 없던 개념이나 논리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도출해내는가입니다.

0) 활용하기 힘들 거 같아요

재료종합설계에서는 주어진 주제에 맞는 새로운 연구를 제안해야 합니다. 아이디어의 초안을 잡는 것은 4월 초~중반에 이루어집니다. 저희 조의 경우 큰 주제는 이산화탄소 포집이었으며, 해당 주제 안에서 더 발전시킬 세부주제를 정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아이디어 내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제안은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때 쓰는 효소가 몰리브데늄 기반이라, 이를 응용한 소재를 만들자고 했던 것이네요. 다만 이런 아이디어는 논리적 뒷받침과 구현 가능성이 부족해 조원들이나 멘토 교수님 선에서 모조리 반려당했습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엔 다른 조원 분이 기존 논문을 토대로 제안해주신 방법이 응용 가능성이 높아 이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 건 공학이 아니라 공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쉽지만, 실현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교훈 :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백업하기보단, 공부를 많이 하고 그로부터 아이디어를 뽑아내자.

1. 그 논문 그런 내용 아니에요

“아뇨, 가스를 주입하면서 가열하는 게 아니라, 가열한 후의 생성물과 가스를 반응시키는 거예요. 가열 결과 열분해에 의해 나트륨이 석출되는데, 이게…”

“아, 아… 그렇군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연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논문을 읽는 게 아니라, 논문으로부터 재료, 공정, 실험 결과와 의의 및 한계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존 논문의 한계와 후속 논문의 개선점까지 파악하면 더 좋습니다.
어느덧 4월 후반, 저희 조의 아이디어 방향성이 결정된 이후, 아이디어의 토대가 된 논문을 모두가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읽어본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점은, 저 혼자 논문의 공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 패착은 여기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논문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리를 놓치고 있었고, 단순히 ‘고온’과 ‘열분해’까지만 머릿속에 남아있었습니다.

교훈 : 당연한 소리지만, 논문을 읽을 땐 꼼꼼하게 원리를 이해하자.

2. 저희 조 주제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 건가요?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되는 논문을 선택했으니, 이를 토대로 다른 아이디어를 접목시킬 때입니다. 저희 조의 가장 핵심이 되는 논리는 열분해를 통해 석출되는 나트륨 이온이었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높은 열분해 온도와 원치 않는 열분해 부산물이었습니다. 저는 열분해 부산물을 줄이기 위한 방법들을 이것저것 조사해 보았지만, 제가 제시한 방법은 나트륨의 석출조차 일어나지 않는, 조의 주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지못해 조장님이 넌지시 건넨 질문에 제가 주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5월 초의 일이니, 4월부터 시작되는 2달 반 정도의 프로젝트 기간 중 1달이 넘는 기간을 혼자 딴짓하고 있었던 셈이네요. 조원들의 눈빛이 따갑습니다.

“승윤님은… 뭐, 이거나 해주세요…”

아아, 신뢰를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제 실수를 인지한 후에 기존 논문을 다시 읽고 조별과제의 논리적 흐름을 처음부터 다시 따라잡기로 했습니다. 물론 그러는 동안 제 자료조사는 더 부실해졌고, 반면 조원들은 기존 토의 내용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더 다듬고 구체화하고 있었죠. 업무분배에서도 조금씩 제 역할이 줄었습니다.

교훈 : 기초 없는 응용은 불가능하다.

3. 될 줄 알았는데, 안되는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5월 중순쯤 되면 아이디어의 개요는 전부 정해졌습니다. 남은 것은 아이디어의 논리를 강화하고, 허점을 메꾸고, 질문에 대비하는 과정입니다. 연구자들도 졸업 전에는 디펜스라 불리는 최종발표회를 통해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니, 어쩌면 정말로 재료종합설계는 연구자가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축약한 과목일지도 모르겠네요.

“기존 논문에서 제공한 기체조성비와 질량보존, 각 원자에 대한 총량 보존 법칙을 연립하니 수득률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저희 공정을 이어서 할 경우, 예상되는 부가가치는…”

“어, 저는, 그, 열 방출량 그래프의 면적으로부터 순간 반응 속도를 계산해보려 했습니다. 근데 반응물 엔탈피 값을 모르겠어서 계산이 더 안돼요…"

저희 조는 제안한 공법의 수득률과 경제적 효과와 같은 부가정보를 유추하기 위해, 처음의 논문들을 다시 복기하면서 더 깊은 수치적 분석을 했습니다. 이거라도 잘했으면 만회가 됐으려나요. 제 분석은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마지막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논리적 흐름도 조원들의 도움을 받아 쫓아왔고, 이미 읽은 논문을 가지고 진행한 건데도 분석에서 차이가 난다는 건, 그만큼 통찰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통찰이나 직관도 경험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결론만이 남은 것 같습니다.

교훈 : 공부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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