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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 학술세미나/수학 & 통계학

과학과 통계학이 바꿔버린 야구

by STEMSNU 2021. 6. 1.

안녕하세요?

  저는 STEM 11.5기 활동 중인 이태균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혹시 야구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참 좋아했는데요, 현재도 거의 매일마다 진행되는 프로야구 경기를 즐겨보고 주말마다 야구 동아리 활동을 하는 등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ㅎㅎ.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야구라는 종목은 통계학/공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과학적인 첨단 기술들을 활용해서 경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기술들이 현대 야구의 흐름을 바꿔놓기까지 했는데요, 어떠한 일들이 그 동안 있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한 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저도 한국 프로야구를 좋아하긴 하는데요, 이 글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기술의 발전이 직접적으로 적용된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MLB)에 맞춰서 기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비 시프트

전통적인 야구의 수비 방식입니다. 투수, 포수, 내야수 4명, 외야수 3명이 대칭적으로 수비합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9명의 수비수가 위의 그림과 같이 서서 수비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타자가 친 공은 그라운드 곳곳에 떨어질 수 있는데, 경험적으로 가장 많이 떨어지는 위치와, 예기치 못한 곳에 공이 떨어졌을 때 처리를 하러 가기가 가장 효율적인 위치에 서다 보니 위 그림과 같은 형태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랜 시간동안 이 수비위치에 대한 고정관념은 거의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13년, 만년 꼴찌를 달리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상대 타자에 따라서 수비 위치를 계속 다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아예 최초는 아니었습니다. 먼 옛날인 1940년대에 테드 윌리엄스라는 타자가 있었는데, 이 타자는 좌타석에서 매우 잘 당겨쳐서 수비들이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여서 수비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특정 타자에 대한 단편적인 시도 말고, 팀 전체가 작정하고 매 순간마다 수비 위치를 다르게 하는 시도는 여러 야구 전문가들의 비난을 불러일으킬 만큼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피츠버그는 통계학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이 시도에서 대박을 터뜨리게 됩니다.

  2012년 79승 83패였던 팀은 1년 사이에 2013년 94승 68패에 빛나는 강팀이 되었고, 팀은 전성기를 달리게 됩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수비 시프트가 모든 팀에서 대유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2021년까지 매 년도마다 시프트 횟수는 감소없이 쭉 증가 추세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 같으면 보지 못할 장면들도 많이 연출되곤 합니다.

좌측 사진은 타구가 올 확률이 낮은 3루쪽을 비우고 외야수를 4명 세운 모습입니다. 이 때 타자는 한국에서도 뛰었던 에릭 테임즈 선수인데요, 파격적 시도가 무색하게 우측 뒤쪽 바다에 빠지는 홈런을 쳤습니다. 우측 사진은... 내야수 네 명이 다 한쪽에 서있는 모습이네요. 엄청 극단적이지만, 땅볼이 이 중 한 명에게 굴러가며 성공적인 시프트가 됐습니다.

  좌측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극단적 수비의 근거는 통계입니다. 타자에 대한 많은 데이터를 쌓아오면서, 이를 분석하고 효율적인 수비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해진거죠. 최근에는 각 타자에 대한 수비 시프트 뿐만 아니라 볼 카운트나 투수 교체에 따라서도 수비 위치를 변화시킨다고 하니, 그야말로 "데이터 야구"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발사각 혁명

  하지만 이런 방해공작이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타자들이 아니죠. 과학 기술의 발달은 타구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에도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특히 스탯캐스트라는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타자들의 기술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스탯캐스트는 타구의 속도, 각도와 비거리를 정밀하게 추적해서 알려주게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눈대중으로 추측했을 수치들입니다.

  원래 스탯캐스트는 군사용 레이더에 쓰이던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술을 야구장 내로 들여오자, 타구의 속도와 각도, 비거리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타구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갑론을박이 있었던 "정석적인 타격이란 무엇인가?"에 통계가 답을 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은 장사라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필요했던 정보는, 그 센 힘으로 도대체 몇 도의 각도로 타구를 날려보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는데요, 27도의 각도에서 타구가 가장 멀리 뻗는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메이저리그에서는 우후죽순 홈런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수비 시프트를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을 아예 그라운드로 굴리지 않고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연도별 경기당 홈런 갯수를 내림차순으로 정렬해봤습니다. 최근 몇년간, 역대 메이저리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메이저리그의 홈런 갯수는 역댓급으로 많습니다. 중간중간에 끼어있는 1999년-2004년은, 선수들이 불법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했던것으로 알려진 시기입니다. 그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홈런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경기를 실제로 보면, 그렇게 많은 점수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투수들의 기술도 향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 패스트볼

  스탯캐스트 등의 추적 기술은 타구 뿐만 아니라 투구 추적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 분석 결과, 타자의 눈높이로 가는 높은 패스트볼이 삼진을 잡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죠. 사실 높게 던진 직구는 잘만 던지면 타자가 속을 수 밖에 없는 좋은 공이지만, 실수로 조금만 낮아지게 되면 아주 치기 좋은 한가운데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이미 메이저리그에는 수 많은 홈런들이 터지고 있습니다. 맞으면 높은 확률로 홈런이 나온다고 했을 때, 아예 배트에 공조차 맞지 않고 타자를 아웃시키는 삼진이 나오는 것이 어찌보면 좋은 해결책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경향성 때문인지, 최근 몇년간 삼진율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상승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트렌드, 과연 맞는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투수는 높은 직구를 던지고, 타자는 스윙 각도를 크게 하여 홈런을 만들고, 수비수들은 자기 위치를 벗어나서 수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추세가 생긴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야구계에서는 여러 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테오 앱스타인 전 시카고컵스 사장, 전 국가대표 투수 김병현

  시카고 컵스를 108년만에 우승으로 이끈 테오 앱스타인 사장은 사임하면서 야구의 진화과정에서 본인을 포함한 여러 경영자들의 과도한 분석으로 야구의 재미가 떨어지고 그 인기에 심각한 위협이 가해졌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실제로 위에서 말했듯이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은 이제 천편 일률적으로 투수라면 삼진을, 타자라면 홈런을 노리고 있습니다. 경기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흥미가 떨어질 수 있고, 이렇듯 스포츠에서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은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전반적인 시장에 대한 파이가 작아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우승만 두번 경험해본 김병현 선수는 또 다른 관점에서 이러한 야구의 변화를 비판했습니다. 수비 시프트의 경우 수비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많은 팀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투수의 멘탈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투수의 경우 평범한 땅볼이 나왔을 때 원래의 수비위치였다면 무난히 잡을 수 있었을 타구를 수비 위치를 옮겨서 못 잡게 된다면, 그 미련 때문에 남은 경기를 제대로 던지기 힘들 것이라고 김병현 선수는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맹점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결국 야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이 보고 즐기는 것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통계가 아무리 객관적인 정답을 알려준다 할지라도, 결국 스포츠는 인간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1차적인 고려대상입니다. 과연 앞으로 과학기술과 통계학의 발전은 스포츠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 될까요? 이러한 관점속에서 야구라는 종목을 바라볼 수 있다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공학이 앞으로의 야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제를 하나 이야기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AI 심판

'인간' 심판은 귀에 꽂힌 이어폰의 'AI' 심판의 지시를 그대로 따릅니다.

  야구에 크게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라면 모르시겠지만,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야구 모두 2군에서 AI 심판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순간적으로 분석하여 스트라이크, 볼을 판정하고 심판의 귀에 꽂힌 무선이어폰으로 결과를 전달하여 심판이 콜을 하는 방식인데요, 맨 처음에는 이 간격이 너무 길어서 실용성이 없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기술력이 매우 발전하여 약간 느린 정도로 경기를 진행하는데에는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AI가 스트라이크 존을 판정하게 된다면, 야구라는 종목에서 심판의 재량이 마음껏 발휘되던 부분마저 공정하게 판정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야구팬들은 찬성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1군에 곧바로 적용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적어도 2년 안에는 1군 경기에서 AI 심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과학기술이 간접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경기의 판정에 간섭하는 시대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공정한 판정을 볼 수 있는 팬들도 win, 다른 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심판도 win이 될 수 있다면, 기술이 스포츠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죠?

  공학도이자 야구팬인 제 입장에서는,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야구장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드네요 ㅋㅋ 농담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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