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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 학술세미나/etc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공학과 인문학

by STEMSNU 2022. 8. 22.

안녕하세요! 공우 13기, 조선해양공학과 강가현입니다.

오늘은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공학기술과 인문학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19)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배아 디자인, 죽은 사람의 데이터화, 웜홀을 이용한 우주여행과 같은 첨단 기술들이 개발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7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발간된 2019년 오늘의 작가상, 한국과학문학상 대상과 가작 등을 모두 수상하며 한국 문학계를 강타했는데요.

놀랍게도 이 책을 집필한 93년생의 젊은 작가 김초엽은 포항공과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공대생입니다. 이 때문인지 공학자와 과학자들에 대한 묘사가 정확하고, 유전자 조작 등과 같은 보다 현실적인 기술을 주제로 합니다. SF 소설의 설정들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보던 공대생 필자도 이 책만큼은 흥미롭게 읽었답니다 :D 이처럼 있을 법한 미래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문학성을 잃지 않는 균형잡힌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책 속 몇 가지 단편의 줄거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해보고자 해요. 아직 책을 못 읽어보신 분이 계시다면 스포일러 주의! 뒤로가기를 누르셨다가 책을 다시 읽고 돌아오시기를 추천드려요.

소개해 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입니다.
아주 먼 미래, 인류 중 일부는 릴리 다우드나라는 조상을 시초로 외계 행성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 시초지, 즉 기존 지구에 다녀오는 "순례길"을 떠나야만 하는데요. 어째서인지 순례길을 떠난 사람들 중 돌아오는 사람은 항상 채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화동인 주인공 데이지는 이런 상황에 의문을 품고, 지구란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데이지는 곧 수백 년 전 이 행성에 정착했던 릴리 다우드나는 지구에서 촉망받는 유전공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그녀는 지구에 살았을 때 완벽한 배아 디자인 기술을 개발하고, 거액의 돈을 받고 "완벽한 외형"의 자녀를 만들어 주는 회사를 운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체 왜 릴리 다우드나는 벌어둔 돈으로 부유하게 살 수 있는 지구를 떠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외계에 정착한 새로운 인류는 왜 다시 지구에 가고,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책에서 그 답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주요 인물인 릴리 다우드나의 '다우드나’가 제니퍼 다우드나라는 실존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사실인데요.

CRISPR-Cas9 system의 발견으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제니퍼 다우드나

제니퍼 다우드나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사용되는 CRISPR-Cas9 시스템을 발견한 공로로 2020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중 한 명입니다. 현재도 우려가 많은 유전자 조작 기술의 명과 암을 정조준 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이 작품은 과연 유전자 편집 기술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외적이든 내적이든 결함이라는 것이 우리를 꼭 불행하게만 만드는 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소개해 드릴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입니다.

웜홀을 이용해 우주여행이 가능해진 먼 미래, 작동을 멈춘 지 오래된 폐 우주정거장에는 무엇인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한 할머니가 있습니다.

이 할머니는 우주 개척 기술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연구원으로, 남편과 아들을 먼저 머나먼 행성으로 이주시키고 자신도 마무리 중인 프로젝트만 끝나면 떠나 함께 살 예정이었는데요.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의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운항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마지막 우주선이 출발하는 순간, 그녀는 인생을 바친 연구 성과를 세상에 발표할 것인지, 아니면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마지막 우주선에 탑승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이 연구원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또 어떤 이유로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우주정거장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었을까요?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이 문구인데요.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

저에게는 마치 이 문구가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부족함을 메꿀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완벽할 수 없을 테고, 매번 남겨지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기술 이면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독자적인 정부의 태도,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더라도 사회 곳곳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각지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관내분실>

마지막으로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관내분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기도 했는데요.

MBC 방영, <너를 만났다> (2020)

혹시 2020년에 MBC에서 방영된 특별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를 보신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VR 기술로 고인의 생전 모습을 재현해주는 내용이었는데요. <관내분실>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의 시냅스 패턴을 분석해 '마인드’라는 데이터를 만드는 사회가 배경이 됩니다.
'마인드’는 마치 납골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도서관’에 비치되며, 유족들은 언제나 도서관으로 찾아와 마인드로 구현된 고인의 정신세계와 대화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은 임신을 한 후 돌아가신 엄마의 흔적을 찾아 도서관에 온 주인공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엄마는 심각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집을 일찍이 나온 주인공은 엄마의 기억이 거의 없었죠.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엄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도서관에서 엄마의 데이터는 모두 분실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이를 되찾기 위해 쓸쓸했던 엄마의 삶을 다시 천천히 되짚어 나가게 되죠.

소개드리지 않은 나머지 네 개의 이야기도 독특한 발상과 따뜻한 시선으로 기술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요. 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형식은 SF 소설일지라도 장애, 미혼모, 우울증과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못 읽어보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바라겠구요. 지금부터는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고찰한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과학의 목표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보통 자연의 현상을 분석하고, 우주의 원리를 알고자 한다는 거창한 이미지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러나 과학 역시 다른 여타 학문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을 더 낫게 하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공학은 더 말할 것도 없죠.

현재 인류는 여지껏 겪어본 적 없는 기술의 눈부신 진보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인 발전이 더뎠던 500년 전과 현재를 비교했을 때, 지금의 인류가 더 행복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이루어진 사회가 많이 등장합니다. 질병에 걸리지 않고 완벽한 외형 속에 살게 된 <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가>의 지구처럼요. 또 죽음 이후에도 고인을 계속 만날 수 있게 된 <관내분실>과 같은 사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외형이 완벽해진다고 우리의 내면의 불안함이 사라질까요?
또 데이터로 죽은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과 이별로 인한 슬픔이 사라질까요?

김초엽 작가는 먼 미래의 SF 적 사회를 통해 계속해서 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는 인간이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에 유토피아를 기대할 순 없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허젠쿠이 교수의 배아 유전자 편집 실험

저는 이 책을 읽고 3년 전 중국에서 배아의 유전자 편집 실험을 하고 전 세계적인 질타를 받은 허젠쿠이 교수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교수는 HIV에 감염된 부모의 자녀가 HIV에 수직감염되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실험을 했는데요. 에이즈에 걸린 아이가 태어날 경우, 아이와 부모가 겪어야 할 고통과 투약비용을 고려하면 이 실험은 어쩌면 윤리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은 유전자 교정이 아닌 강화에 해당하기 때문에, 언젠가 자식의 외형과 특성을 바꾸는 실험으로 이어질 지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올해 초 러시아 연구진들이, 부모님의 감염 여부와 무관하게 "아예 에이즈에 걸리지 않게 하는 배아를 착상시키는 실험"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기술 개발이 결국엔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씁쓸한 예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7권의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은 모두 '성공’하진 않습니다.
사실 실패에 가까운 결말을 보이는 작품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의 실패가 결코 이라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모든 소설은 다음 세대에게 선택지를 남겨 놓으며 열린 결말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서 작가가 '인간’에게 기대하진 않지만, '인류’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는 완벽하진 않지만 나아가는 존재이기에 기존 세대의 실패를 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랄 수 있는 것이죠.

또 이 책에서는 이해라는 키워드가 반복됩니다.

<관내분실> 속 키워드 이해

관내분실 에피소드가 대표적인데요. 처음엔 오기로 엄마를 찾아다녔던 주인공이, 엄마의 삶을 거슬러 따라가보다가 결국엔 그녀를 용서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닌 진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우주비행사 희진과 외계 지적 생명체 루이가 다른 언어로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스펙트럼>이라는 단편에서도 마찬가지죠.

책을 읽다 보면, 기술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완전히 해결해줄 수 없고,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해해야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시작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술 자체가 해답이 아닙니다. 기술 이면에 있는 인간을 인식하고 사유해야지만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공학자와 인문학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힘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사용자 맞춤 게시글’, ‘알고리즘’

우리는 이러한 기술들을 통해 점점 나와 다른 생각들을 접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바쁘고 각박한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건 굉장히 피로한 일이기도 하지요. 인문학적 사유는 사치로 보일 정도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래는 제가 이 글을 쓰며 언급한 질문들입니다.

  • 유전자 편집 기술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외적, 내적 결함은 인간을 불행하게만 하는 것일까?
  • 경제성은 없지만 소외계층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은 개발가치가 있는가?
  • 외형이 완벽해지면 내면의 불안함이 사라질까?
  • 죽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다면 이별로 인한 슬픔이 사라질까?
  •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은가?

이 질문들은 정답도 없을 뿐더러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서 이런 질문으로부터 사유할 수 있는 '다름’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합니다.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떻게 기술로서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공학자, 또는 예비 공학자 여러분들도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상으로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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