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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M - 학술세미나/재료공학

금지된 5회 대칭 구조

by STEMSNU 2021. 6. 12.
Forbidden_five_fold_symmetry

금지된 5회 대칭 구조

반갑습니다!
저는 STEM 12기 김호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금지된 5회 대칭 구조” 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께 재미있는 주제를 소개시켜드리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자연의 대칭성

자연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칭성이 숨어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대칭성이 바로 병진 대칭회전 대칭입니다. 각각의 대칭에는 그에 대응하는 대칭 조작이 존재하는데, 어떤 요소가 대칭성을 갖고 있을 경우, 그에 대응하는 대칭 조작을 가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병진 대칭을 갖는 물체의 경우 평행이동을 해도 같은 모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고, 회전 대칭을 갖는 물체의 경우 회전을 해도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게 되겠죠? 특히 회전 대칭의 경우는 하나의 온전한 회전을 몇 번의 회전으로 쪼갤 수 있느냐에 따라 n회 대칭(n-fold symmetry)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칭합니다. 가령, 1회전의 1/3에 해당하는 120도 회전을 통해 물체가 원래 모양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이 물체는 3회 대칭 구조를 갖게 됩니다.

대칭성을 갖는 결정

이러한 대칭성은 재료공학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요, 그것은 재료공학에서 결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결정은 기저(basis)격자(lattice) 의 합, 정확하게는 둘의 convolution으로 나타내어지는데, 기저는 반복되는 단위, 즉 원자나 분자를 의미하고, 격자는 주기성을 주는 반복 구조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격자가 병진 대칭성을 결정에 주게 되는데, 이로 인해 각 격자점을 아래와 같은 격자 벡터(lattice vector) 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R=n1a1+n2a2+n3a3R=n_1a_1+n_2a_2+n_3a_3
​이때 n1n_1​, n2n_2, n3n_3​는 정수이고, a1a_1 a2a_2, a3a_3​는 격자점 간의 평행 이동(혹은 병진 대칭)을 나타내는 격자 단위 벡터입니다.

결정에서는 격자 뿐만 아니라 기저도 대칭성을 가질 수 있는데요, 이때 기저의 대칭성은 격자가 갖는 대칭성과 결맞아야 합니다. 이로 인해, 결정에서는 오직 1회, 2회, 3회, 4회 그리고 6회 대칭 구조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증명은 (선형대수, 혹은 기하와 벡터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게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한 격자점 R1R_1​을 다른 격자점 R2R_2​로 보내주는 회전 대칭에 대응하는 행렬을 TT라고 써봅시다. 이때, 회전 전후에 각 격자점의 좌표는 격자 단위 벡터의 정수배로 표현되기 때문에, TT를 격자 단위 벡터를 기저로 하여 행렬 요소가 모두 정수인 행렬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한편, 행렬의 대각합(Trace)은 기저 변환에 대해 불변입니다. 행렬 MM의 trace는 tr(M)=ΣMiitr(M)=ΣM_{ii}​로 정의되므로, 정규직교기저에서 z축에 대한 회전 행렬 TT'
T=(cosθsinθ0sinθcosθ0001)T' = \begin{pmatrix} cos\theta & -sin\theta & 0 \\ sin\theta & cos\theta & 0 \\ 0 & 0 & 1 \end{pmatrix} 로 쓴다면, tr(T)=tr(T)=1+2cosθZtr(T)=tr(T')=1+2cos \theta ∈ Z를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θ\theta는 오직 2π/6(cosθ=1/2)2\pi/6(cos\theta=1/2), 2π/4(cosθ=0)2\pi/4(cos\theta=0), 2π/3(cosθ=1/2)2\pi/3(cos\theta=-1/2), 2π/2(cosθ=1)2\pi/2(cos\theta=-1), 2π/1(cosθ=1)2\pi/1(cos\theta=1)의 다섯가지 값만 가질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각 6회, 4회, 3회, 2회, 그리고 1회 대칭 구조에 해당합니다.

금지된 5회 대칭 구조

앞서 증명했듯이, 완벽한 결정 구조는 절대로 1회, 2회, 3회, 4회 그리고 6회 회전 대칭 이외의 회전 대칭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그림처럼 나노 결정의 성장 과정에서, 정십이면체 혹은 정이십면체의 핵성장이 관찰되기도 합니다.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의 특징은 5회 대칭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죠. 특별히 면심 입방 결정을 갖는 금속(예: Au, Pd, Pt)에서 정이십면체가 나타나는 이유를 생각해봅시다. 면심 입방 결정은 {111} 방향의 면이 가장 밀도가 높고, 따라서 에너지가 낮습니다. 따라서 면심 입방 결정을 갖는 금속이 나노 결정으로 성장할 경우에, {111} 면 만으로 둘러쌓인 정팔면체로 성장하는 것이 가장 안정합니다. 한편, 정팔면체와 정이십면체는 모두 FCC 결정의 {111} 면으로 둘러쌓인 입방체지만, 부피가 같을 때 정이십면체의 표면적이 더 작습니다. 따라서 아래의 핵성장 이론를 생각해봤을 때, 정이십면체의 핵성장이 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죠.
ΔG=ΔGV+ΔGS=VΔGv+Sγ\Delta G = \Delta G_V + \Delta G_S = V \Delta G_v + S \gamma

면십 입방 구조의 금속 결정 성장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의 나노 결정이 성장하기도 합니다.

분명 완벽한 결정 구조는 5회 회전 대칭을 가질 수 없다고 했는데, 나노 결정은 분명한 5회 회전 대칭을 갖는 정이십면체 구조를 가지기도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네요. 나노 결정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일까요?

재료 내의 결함

맞습니다. 나노 결정이 완벽하지 못한 것이, 나노 결정 구조에서 5회 회전 대칭이 나타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현실 세계의 결정은 항상 완벽하지 못하고, 그 안에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정 내 결함은 그것의 차원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고, vacancy, impurity 등의 점결함(point defect), dislocation 등의 선결함(line defect), grain boundary, twin 등의 면결함(plane defect), 그리고 precipitate 등의 부피결함(volume defect) 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로 면결함이 5회 회전 대칭을 만들어내는 비결입니다.

면결함과 Coincidence Site Lattice (CSL)

결정은 결정립(grain) 이라는 작은 단결정들의 모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결정립들간의 경계를 결정립계(grain boundary) 라고 칭합니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결정립들이 마구잡이로 배열되어 있으면, 그 경계에서 에너지가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립들이 특정한 각도를 이루고 배열될 경우, 각 결정립의 격자점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때 아래 그래프처럼 에너지가 특징적으로 낮아지게 됩니다. 이때 일치하는 격자점을 Coincidence Site라고 부르고, 이들 역시 병진 대칭을 갖는 격자점들의 집합이 되므로 Coincidence site lattice (CSL) 라는 새로운 결정으로 지칭할 수 있습니다.

결정의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 결정립들은 특정한 각도를 이루며 배열됩니다.

결정립들이 이루는 각도에 따라 결정립계를 특징지을 수 있는데, 그 각도에 따라 CSL단위 격자의 부피도 달라지게 됩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원래 격자의 단위 격자 부피에 대한 CSL의 단위 격자 부피의 Σ\Sigma 값으로 정의하여 사용하고, 특정 Σ\Sigma 값을 갖는 결정립계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식이 성립하게 됩니다.

특정한 결정립계

그 관계를 살펴보기에 앞서, 특정한 Σ\Sigma 값을 갖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결정립계를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면심 입방 구조를 <110> 방향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그림과 같이 2개의 {111} 면과 {200} 면이 잘 드러나도록 단순화하여 나타낼 수 있습니다.

면심 입방 구조 금속의 원자구조의 2차원 표현

Σ=1\Sigma = 1 인 경우, 기존의 결정과 CSL이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두 결정립 사이의 각도는 0이고, 이는 완벽한 결정에 해당합니다.
Σ=3\Sigma = 3 인 경우, 아래 그림에서처럼 한 결정립을 70.53°70.53\degree 기울였을 때 발생하고, 이때 두 결정립의 {111} 면이 정확하게 겹쳐집니다. 이 특징적인 결정립계를 쌍정계(Twin Boundary) 라 부르며, 이 결정립계가 나노 결정에서의 5회 회전 대칭을 만들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Σ3\Sigma_3 경계는 특별히 쌍정계라고 칭합니다.

Σ=9\Sigma = 9, Σ=27\Sigma = 27인 경우는 한 결정립을 각각 38.94°38.94\degree, 31.59°31.59\degree 기울였을 때 발생하며, 아래 그림과 같이 CSL의 단위 격자 부피가 원래 결정의 단위 격자 부피의 각각 9배, 27배에 해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Σ9\Sigma_9 경계

Σ27\Sigma_{27} 경계

5회 회전 대칭의 형성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쌍정계를 5개 이어 붙이면 대략 360° 를 만들 수 있음을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나노 결정에서 관찰되는 5회 회전 대칭은 사실, 5개의 쌍정계가 한 점에서 만나면서 생성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Σ=3\Sigma = 3 경계(쌍정계)와 Σ=9\Sigma = 9 경계, 그리고 Σ=27\Sigma = 27 경계의 각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정립계 분해 방정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Σ9Σ3+Σ27\Sigma_9 \leftrightarrow \Sigma_3 + \Sigma_{27}

혹자는 여기까지 따라오는 동안 본문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을 넘어, 결정립계의 각도와 Σ\Sigma 값 사이에 성립하는 일반식을 발견하고, ΣA/BΣA+ΣB\Sigma_{A/B} \leftrightarrow \Sigma_A + \Sigma_B​ 혹은 ΣA×BΣA+ΣB\Sigma_{A \times B} \leftrightarrow \Sigma_A + \Sigma_B​라는 일반식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 식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을 여기에 모두 적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페르마의 심정으로 여러분들을 위한 과제로 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이 결정립계 분해 방정식은, 나노 결정 성장 과정에서 5개의 쌍정계를 이어붙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과학 기술, 특히 전자현미경 기술의 눈부신 발달에 힘입어, 나노 결정 성장을 원자 단위로 관찰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노 결정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본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개념 이외에도 전위론(dislocation theory), 결정학(crystallography) 등 재료공학과 관련된 몇 가지 이론들을 더 알아야 합니다. 이 이론들을 간단하게 공부하신 뒤에, 작년에 Science라는 훌륭한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을 읽어보시면, 5개의 쌍정계가 어떻게 한 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링크를 따라가면 고해상도 투과 전자 현미경(HRTEM)으로 5개의 쌍정계가 만나는 장면을 직접 촬영한 흥미로운 영상도 보실 수 있으니, 꼭 저 논문을 한 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릴게요!

5회 회전 대칭 구조의 응용 - 나노 입자 기반 촉매 개발

지금까지 완벽한 결정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5회 회전 대칭이, 쌍정계라는 결함을 이용할 경우 나노 결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공학적으로 이 현상을 어디에 응용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용한 것은 이 나노결정을 촉매로서 이용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5회 회전 대칭은 기본적으로 쌍정계라는 결함을 포함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쌍정계는 결정립계에 속하므로, 단결정의 면보다는 에너지가 높을 수밖에 없죠. 쌍정계의 높은 에너지는 촉매 활성을 위한 “촉매 활성 자리” 로서 쌍정계가 작용할 수 있게 합니다. 예컨대 쌍정계를 잔뜩 포함한 정이십면체 나노입자의 경우, 일반적인 나노입자에 비해 촉매 활성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보통 나노입자를 합성하면서 결정 내에 결함을 “인위적으로”, 동시에 “균일하게” 도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조절하기 어려운 요소이기 때문에 결함, defect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나노 입자가 정이십면체로 핵성장하는 것이 단결정보다 더 작은 표면적을 갖는 방법이기 때문에, 쌍정계를 포함한 5회 대칭 구조를 갖는 결정을 균일하게 성장시키는 것은 비교적 할만한 일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하기만 한다면 좋은 논문을 낼 수 있지요. 팔라듐(Pd)과 백금(Pt)으로 정십이면체 나노입자를 만들어, 산소 환원 반응(Oxygen Reduction Reaction, ORR)을 위한 촉매로 사용했을 때 향상된 촉매 활성과 안정성을 보여주었다는 연구 결과가 화학 분야의 매우 저명한 학술지인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등재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마치며

사실 대칭성이라는 개념은 재료공학보다는 화학, 특히 물리학과 같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더 좋아하고 많이 연구합니다. 화학에서는 무기화학,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 분야에서 이러한 대칭성을 많이 다루지요. 재료공학이 이들과 비교하여 갖는 특징은, 바로 결함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화학자 혹은 물리학자가 바라보았을 때, 이들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결함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재료공학자가 보았을 때, 이들은 오히려 행운에 가깝습니다. 결함을 ‘없애야할 것’ 대신 '반드시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화학자와 물리학자는 보기만 해도 학을 떼는 "5회 회전 대칭"을, 재료공학자는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심지어 공학적으로 응용하기까지 하는 것이죠.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원하는 성질을 갖는 재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 내에 이러한 결함이 존재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오히려 이 결함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가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재료공학을 결함공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 학과 이름을 이렇게 지어놓으면 아무도 진학하지 않겠죠?..)

본문에서 소개해드린 내용 말고도 재미있는 내용이 너무 많은데, 그걸 다 소개시켜드리려면 포스팅을 5개는 더 써야할 것 같네요. 이 글을 읽고 결함을 다루는 재료공학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신 분들은, “Defect Engineering” 이라는 키워드로 공부할 거리를 더 찾아보셔도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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